만복론 번역 | 006

2018. 6. 15. 17:21

006 <간 부추 볶음[각주:1] 사건>

 

   주 가는 접골원[각주:2]의 선생님에게 놀라운 지적을 받았다. 「사카모토씨, 2일 정도 전에 엄청나게 화난 일 있었어요?」 정곡을 찔렸다. 확실히 이틀 전, 나는 최근 몇년간은 본 적 없을 정도의 격렬한 화를 폭발시켰었다. 그 격렬함이란, 나우시카류로 말하면 분노에 휩싸여 자기 자신을 잃어 벌레 피리[각주:3]도 효과가 없을 정도. 선생님이 말하길 「"배가 일어난다"[각주:4]는 말처럼, 심하게 화가 나거나 하면 뱃속에 딱딱한 응어리같은 것이 생겨요」라고 한다. 

   사건이 있던 날. 아침부터 내 기분은 좋지 않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며칠이나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데다 그때 하필이면 나의 업무 친구인 컴퓨터가 갑작스런 고장. 중요한 자료도 사진도 순식간에 사라지는 악몽같은 일이 닥쳐 왔는데, 그걸 수리하러 갈 시간조차 없었다. 바쁜 것 대환영 뿌리부터 워커 홀릭인 나도 역시 조금 지쳐 있었다. 그런 때야말로 몸에 좋은 걸 제대로 먹지 않으면. 육체도 마음도 단번에 기운 나게 할 수 있는 스테미너가 듬뿍 들어있을 것 같은 것. 예를 들면…… 그래, 리버(간)[각주:5]같은!

   나는 왠지 맹렬하게 이상할 정도로 리버가 먹고싶었다. 몸이 요구하고 있었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열흘도 더 전부터 「간 부추 볶음 먹고싶어~」라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었다. 그러니까 그날 밤.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저녁밥을 배달해서 먹게 되어 선택한 중화 요리 식당의 메뉴판에 간신히 「간 부추 볶음」이란 글자를 발견했을 당시 나의 기쁨이란!

   심지어 메뉴판에는 특별히 「가게 명물 메뉴~!」라고 빨간 글씨로 써져있는 게 아닌가. 운명임에 틀림없다! 신님 고마워요! 이 리버만 먹으면 나의 기력은 반드시 다시 살아날 거예요! 라고, 덩실거리며 큰 목소리로 「간 부추 볶음~!」을 주문했다. 1시간 후, 도착한 도시락에 시원스레 매직펜으로 적혀있던 글자는 「고기 부추 볶음」이었다. 

   어이. 잠깐. 이상하잖어, 가게 명물 메뉴는 어디 간거야. 당신, 간 부추 볶음의 「간」이 뭔지 알고는 있는거야? 가, 아, 안~~~!!! 지금 당장 간 부추 볶음으로 바꿔서 다시 가져와!!! 크앙~~!!!! 너무 화가 났었기에 그 뒤의 기억은 아물거린다. 「그렇게 화낼 것 까지는…….」 라고 스텝이 말하며 깬다고 느낄 것을 스스로도 느꼈지만 사그라들지 않는 이 분노. 거칠어지는 말투. 간신히 간 부추 볶음이 도착한 건 그 후 2시간도 지나서였다.

   울었다. 고작 간 부추볶음 때문에 울었다. 사카모토 마아야 28세. 그런데 이런 자신이 점점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가 고파서 야수처럼 큰 소리를 내어 우는 자신은 얼마나 와일드한 건지. 어떤 의미로는 본능에 충실한 것이니 동물로서는 맞는 모습일지도?! 그렇지만, 역시 웃으며 행복한 기분으로 살아가는 편이 틀림없이 건전하다.

   배가 고파도, 배가 일어나도, 좋은 작품은 만들 수 없소. 불평하면서도 염원하던 간 부추 볶음을 먹고, 무사히 레코딩을 진행하고 잘 마쳤었더란다. 반성 그리고 만복.

 

08年 9月

● 베츠바라[각주:6]

정말 정상이 아니었어요. 당시 매우 알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한편, 자기 자신을 좋아하지 못해서 마음이 삐쭉삐쭉. 

자그마한 일로 바루루 떨어버리고. 아, 지금 원래는 바르르 라고 쓰려고 한 걸 잘못 썼는데 재밌으니까 그대로 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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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뜻인 "虫の居いどころが悪い"라는 관용구를 알게 됐다. 처음엔 몰라서 마침 벌레 피리 나오는 김에 계속 벌레 네타인가 해서 직역할 뻔 했는데 그러기 전에 사전에 쳐보니 예문이 딱 나왔다. 직역하면 벌레의 거처가 나쁘다인데 뭔가 알 거는 같음ㅋㅋㅋㅋ
 이번편은 각주가 많다. 제목인 레바니라부터 완전 초면인 단어와 용어들이 많이 나왔다..그래도 검색하면 뭐든 나온다는 사실이 참 편한 세상에 살고 있음을 실감하게 함 구글쨩 최고
 원래는 원문의 발음을 그대로 표기한 레바니라로 썼다가 저 레바도 우리나라식으로 발음하면 '리버'고, 간 부추 볶음이라고 치니까 음식이 나오길래 그렇게 씀. 그리고 그 뒤에 고기 부추 볶음 때문에 레바니라를 그대로 쓸 수가 없었다...
 여러모로 용어 통일하기가 까다로웠다... 리버를 간이라고 정직하게 해석해버리면 좀 이상하게 보여서ㅋㅋㅋㅋㅋ구미호냐고.... 그래서 약간은 우회적인 느낌으로 리버라고 씀. 아예 메뉴 풀네임을 쓰는 방법도 있었지만 원문의 뉘앙스를 해치고 싶지 않아서 (원문도 レバー라고만 써져 있었음) 나름의 타협을 한 셈이다.
 그래도 원문의 レ、バ、ア 이건 가, 아, 안 으로 바꿨는데 초큼 아쉽.. 리, 이, 버였어도 마찬가지였으려나; 그리고 깬다는 뜻의 ドン引き는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정말 내 국어능력의 한계ㅋㅋㅋㅋㅋ아니 느낌적으론 확 와닿음 설명하면 뉘앙스는 다르지만ㅋㅋ 깬다, 실망한다는 거잖아 뭐 저런걸 가지고 저렇게까지...? 저걸 풀어쓰면 '스텝이 깬다고 느끼는 걸 느끼고 있었지만' 이렇게 쓸 수 있다
 근데 내가 가장 지양하고 가장 싫어하는 같은 단어 쓰기가 나와버림 문장으로 봐도 별로 안예쁘고; 크앙은 원래 갸오. 갸오 그대로 썼다가 전에 본 애니였나... 아무튼 등장인물이 갸오-! 하면서 호랑이인가 곰인가 아무튼 육식동물ㅋㅋ 흉내를 내는 게 기억이 나서 그 울음소리를 생각해서 써봤다. 개인적으로는 맘에 듬.
 진짜 오래 걸렸다.....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어렵기도 했어..... 메뉴 통일부터 의성어까지 이래저래 머리 싸맸음.... 베츠바라의 바르르 부분의 원문은 ピロピロ/ピリピリ 였답니당....원문을 알면 말마따나 재밌을 거 같아서 여기다 적어둠.

 

  1. 원문은 レバニラ. 돼지 또는 닭의 간과 부추를 넣어 볶은 중화요리. [본문으로]
  2. 검색 결과 "어긋나거나 부러진 뼈를 맞춰주는 곳"이라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물리치료실 및 마사지샵에 가깝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식 의료기관이 아니기에 개념 자체도 생소하고 운영하는 사람도, 이용하는 사람도 극소수지만 일본에서는 접골원의 수가 많고, 자격증을 가진 전문 지압사들이 운영하고 있다. 정골원이라고 하기도 한다. [본문으로]
  3.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나오는 피리. 곤충에게 최면을 걸 수 있다. [본문으로]</바람계곡의>
  4. 腹が立つ, 화가 난다는 뜻으로, 문맥 상 직역했다. [본문으로]
  5. liver [본문으로]
  6. 설명은 만복론 번역 | 001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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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복론 번역 | 005

2018. 6. 12. 23:04

005 <아빠의 아침밥>


   을 시작하기 전 미리 해명부터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매우 성실하고 상냥합니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꽃다발을 빼먹지 않고 챙기며 오징어 젓갈을 천재적으로 잘 만들고, 그에 더해 나이보다 젊어보여서 이성에게 인기있는 멋진 레옹족 아저씨[각주:1] 입니다. 그러나, 제가 어렸을 때부터 내심 두려워했던 아버지의 의식이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만드는 아침밥. 평상시에는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지만, 가끔 어떤 용무로 집을 비우실 때가 있기도 합니다. 

   그럴 때 아버지가 전날 밤부터 굉장히 의욕 넘치게 「내일 몇시에 깨울까?」라고 묻습니다. 「혼자서 일어날 수 있으니까 괜찮아」라고 말해도 「늦잠자면 안되잖아!」라며 확고하게 답하죠. 할 수 없이 「그럼 7시」라고 말하면 다음날 아침 꼭 6시 50분에 깨우며 「곧 7시야~」.

   그니까아! 7시에 일어나기로 했는데 7시 전에 깨워지는 건 살짝 짜증난다구요~! 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오지만 일단 「응」이라고 답만 하고 본의 아니게 깼다가 다시 잠자기. 얼굴을 씻고 거실에 가면 아침밥이 여관 밥상처럼 잔뜩 식탁에 줄줄이 차려져 있습니다. 밥, 된장국, 계란말이, 생선구이, 김, 낫토, 샐러드, 냉두부, 절임에 디저트로 요구르트와 자몽까지.

   그러니까아……. 아침부터 이렇게 많이 못먹는다고 늘 말하잖아요……. 라고 말하고 싶은 걸 꿀꺽 삼키고 자리에 앉으면 100% 언제나! 반드시! 물어봅니다. 「우유는?」. 그러니까! 저 우유 마시지 않는다고 10년 전부터 계속 말해 왔잖아요~~~!! 라고 말하고 싶은 것도 입술을 깨물며 참습니다. 언제나처럼 아버지가 만든 계란말이같은 것은 연한 크레이프 상태(심지어 무맛)이고, 밥은 곧 죽!이 될 것 같은 부드러움. 

   그래도 모처럼 아버지가 차려준 밥상이니 묵묵히 먹고 있으면 이 의식에서의 아버지의 최후의 대사가 다가옵니다. 제 얼굴을 들여다 보며 조금 귀엽게 고개를 기울이며 「어때?」라고. 사춘기 때는 이런 일에 일일이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여자애는 왠지 아버지를 향한 반항이 심해지는 시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된 후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아버지란 여성(딸)에게 여러 의미로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남성이라는 것을요. 지금은 저도 미래의 남편분이 꼭 아버지처럼 언제나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고 아낌없이 애정을 표현해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꿈을 먹고 사는 가난한 학생이었던 20대의 아빠에게, 「한번에 보고 핑하고 왔다」고 말하며 첫눈에 반했다던(?) 당시 18살이었던 엄마. 상당히 보는 눈이 있었구나-라고 감탄합니다. 

   덧붙여서, 아버지가 의욕을 가지고 하는 일은 요리 뿐만이 아닙니다. 밤이 되어 귀가하면 제 방 앞에 세탁이 끝난 옷이 깨끗하게 개어져 놓여있기도 합니다. 착실하고 꼼꼼한 아버지는, 속옷도 빼놓지 않고 개어 주셨습니다…. 미묘합니다. 미묘하지만 감사해요. 딸을 향한 아빠의 사랑에 딸은 만복(満腹)입니다.


08年 8月




  1. 2008년 일본에서 유행한 말 중 하나. 조금 불량스럽지만 경제력 있고 멋진 아저씨를 뜻하는 말이라고 함. [참고: https://ja.wikipedia.org/wiki/ちょいわるおや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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